[버블인가 사이클인가 ⑦] AI 전력 136배, 꽂을 전기가 없다
3줄 요약. 언론이 보도한 "AI 에이전트 전력 137배"의 원출처는 KAIST 논문이고, 정확한 수치는 특정 조건의 136.5배다. 미국에서는 전력 경매 가격이 3년 연속 사상 최고를 찍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GPU를 사놓고 못 꽂고 있다. 전력 병목은 버블 신호이기도, 사이클을 늘이는 힘이기도 하다.
AI 에이전트가 질문 하나에 전력을 최대 136배 쓴다는 연구가 나왔다. 증권사 시절 배운 원칙 하나가 먼저 떠올랐다. 병목을 찾으면 사이클이 보인다.
2000년대 조선업이 그랬다. 배를 만들 도크가 모자라자 수주 잔고가 5년치씩 쌓였다. 호황의 길이를 결정한 건 수요가 아니라 공급의 병목이었다. 지금 AI 산업에서 그 병목 자리에 들어선 것이 전력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숫자 하나부터 다시 확인했다. 136배가 어떤 조건에서 나온 값인지, 그리고 전력 병목이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따져봤다. 지난 ⑥편에서 다룬 하이퍼스케일러 캐펙스가 결국 어디에 부딪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36배"는 어디서 온 숫자인가
7월 초 국내 언론들이 "AI 에이전트가 생성형 AI보다 최대 136~137배 전력을 쓴다"고 보도했다. 이런 수치를 볼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원출처를 찾아 측정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다. 조건 없는 숫자는 근거가 아니라 소음이기 때문이다.
추적해 보니 출처는 KAIST 유민수 교수 연구팀의 논문이었다. 컴퓨터 아키텍처 분야 최상위 학회인 IEEE HPCA 2026에 채택된 연구다. 정확한 수치는 136.5배이고, 조건이 붙는다. 700억 파라미터 모델에서 Reflexion이라는 방식의 에이전트가 다단계 질의응답을 처리할 때다. 이때 질문당 GPU 에너지가 348.41Wh로, 같은 모델의 단일 추론 2.55Wh의 136.5배였다. 논문이 제시한 전체 범위는 62.1배에서 136.5배다. 언론의 "137배"는 이 상단값이 반올림 과정에서 흔들린 표기로 보인다.
단서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수치는 GPU 에너지만 잰 것이라 냉각과 서버 전체를 포함하면 실제 소비는 더 크다. 반대로 실서비스는 요청을 묶어 처리하기 때문에 질문당 소비는 이보다 작을 수 있다. 절대치보다 "에이전트는 단순 추론의 수십에서 백수십 배"라는 방향성으로 읽는 게 정확하다.
AI 에이전트는 왜 전기를 먹는가
챗봇에게 질문하면 답이 한 번 나오고 끝난다. 에이전트는 다르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검색하고, 결과를 검토하고, 다시 시도한다. 이 구조가 전력 소비를 곱셈으로 키운다. 논문이 밝힌 메커니즘은 네 가지다.
첫째, 반복 호출이다. 도구를 쓰는 에이전트는 단순 추론보다 평균 9.2배 더 많이 모델을 호출했다. 탐색형 에이전트는 요청 하나에 평균 71번을 호출했다. 둘째, 누적되는 맥락이다. 작업 기록이 쌓이면서 입력 길이가 3~4배로 불어난다. 셋째, 메모리 부담이다. 대화 맥락을 담는 KV캐시가 평균 3배, 최대 5.4배까지 커진다. 넷째, 의외의 낭비다. 에이전트가 외부 도구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GPU는 전체 시간의 최대 54.5%를 놀았다.
넷째 항목이 특히 눈에 띄었다. 비싸게 산 GPU가 절반 넘게 대기 상태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전력 문제인 동시에 투자 효율 문제다. 이 대목은 뒤에서 다시 꺼낸다.
병목은 이미 현실이다 — 세 가지 증거
전망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들을 보자. 국제에너지기구 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4년 415TWh였고,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공급이 이 속도를 못 따라간다는 데 있다.
증거 하나. 미국 최대 전력시장 PJM의 용량 경매 가격이다. 2024/25년 MW당 하루 28.92달러였던 가격이 2025/26년 269.92달러, 2026/27년 329.17달러를 거쳐 2027/28년 333.44달러까지 올랐다. 3년 연속 사상 최고가이고, 마지막 경매는 규제당국이 승인한 가격 상한선에서 청산됐다. 상한이 없었다면 더 올랐을 것이라는 뜻이다. 시장감시기구는 이 급등의 주범으로 데이터센터 수요를 지목했다.
증거 둘. 접속 대기 줄이다. 미국에서 전력망 접속을 기다리는 신규 발전소와 저장 설비가 2025년 말 기준 2,060GW를 넘었다.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전기를 공급할 쪽이 줄을 서 있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 전체 설치 용량의 두 배 이상 규모이고, 상업 운전까지 중앙값 5년 이상 걸린다. 데이터센터는 2년 안에 짓는데 전기는 5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증거 셋. 당사자의 고백이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작년 말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칩 공급이 문제가 아니라, 사놓은 칩을 꽂을 전력 설비가 없어 재고로 쌓여 있다는 것이다. 캐펙스 수백조 원 시대에 병목이 어디로 옮겨갔는지 보여주는 한 문장이다. 그래서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전기를 직접 구하러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리마일섬 원전 재가동 전력을 20년간 계약했고, 구글은 SMR 스타트업과, 아마존은 원전 사업자와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한국은 더 좁다
국내 상황을 짚어본다. 정부 전망 기준 한국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8.2TWh에서 2038년 30TWh로 늘어난다. 원전 3기 발전량에 해당하는 수요가 새로 생기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장기적으로 10GW 이상이 필요하다. 수도권 전체 수요의 4분의 1 규모다.
정부는 2038년까지 72.8조원의 송·변전 투자 계획을 세웠지만, 발전소 부지 갈등과 송전선로 지연이라는 익숙한 변수가 남아 있다. 실제로 전력계통영향평가가 도입된 2024년 8월부터 약 1년간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 신청은 195건에 달했지만, 심사 단계를 거쳐 최종 승인된 사례는 4건에 그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AI 인프라 경쟁력은 반도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송전망을 까는 속도가 같은 무게의 변수가 됐다.
효율이 좋아지면 해결될까 — 제번스 역설
반론도 만만치 않다. AI 효율은 무서운 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GPT-3.5급 성능 기준으로 질의 비용이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2년이 안 되는 사이 280배 넘게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효율이 이렇게 개선되면 전력 문제는 저절로 풀리지 않을까.
경제학은 반대의 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석탄 효율이 좋아지자 석탄 소비는 오히려 폭증했다. 제번스 역설이다. 싸지면 더 많이 쓴다. 저비용 모델 딥시크가 등장했을 때 나델라가 곧바로 이 단어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그 직후 빅테크들은 투자를 줄이기는커녕 늘렸다. 에이전트라는 새 수요처가 효율 개선분을 삼키고도 남는다는 게 KAIST 논문과 IEA 보고서의 공통된 경고다.
그래서, 버블인가 사이클인가
전력 병목이 투자 판단에 주는 신호는 하나가 아니다. 두 해석이 팽팽하다.
사이클 장기화론부터 보자. 병목은 공급 제약이다. 데이터센터는 2년에 짓지만 송전망은 3~7년, 초고압 변압기 납기는 3~5년이다. 가스터빈 제조사 GE버노바의 예약분은 2030년 물량까지 소진을 앞두고 있다. 공급이 못 따라가는 호황은 짧게 타오르고 꺼지는 버블보다, 길게 이어지는 사이클의 모습에 가깝다. 서두에 꺼낸 조선업 도크 이야기와 같은 구조다. 국내 주요 전력기기 3사의 합산 수주잔고가 32조원대, 최소 4~5년치 일감에 달한다는 보도가 이 견해의 물증이다.
조정 앞당김론도 근거가 있다. 전기가 없어 GPU가 재고로 쌓이면, 쏟아부은 캐펙스가 매출로 전환되는 시점이 밀린다. 에이전트 구동 중 GPU가 절반 이상 논다는 앞의 데이터까지 겹치면, 투자 효율 악화가 밸류에이션 조정을 앞당길 수 있다. ⑤편에서 다룬 BIS의 경고와 닿아 있는 지점이다.
증권사에서 여러 사이클을 지켜본 입장에서 내 잠정 결론은 이렇다. 전력 병목은 버블의 방아쇠라기보다, 사이클의 무게중심을 GPU에서 전력 인프라로 옮기는 힘으로 보인다. 다만 이 판단을 바꿀 이정표가 있다. 2026년 6월 이후 열리는 PJM 차기 경매에서 가격 상한이 풀린 뒤의 낙찰가, 그리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캐펙스 가이던스 변화다. 이 두 지표가 꺾이면 결론도 다시 쓰겠다.
핵심 요약
① "136배"의 원출처는 KAIST 논문이며, 70B 모델·특정 에이전트 방식 조건의 상단값이다. 범위는 62.1~136.5배.
② 에이전트는 반복 호출·누적 맥락·메모리 팽창·GPU 대기라는 네 경로로 전력을 곱셈으로 쓴다.
③ 미국 전력 경매가 3년새 10배 급등, 접속 대기 2,060GW, MS는 GPU를 사놓고 못 꽂는 상황.
④ 효율 개선에도 총소비는 늘어난다는 제번스 역설이 반복되는 중.
⑤ 병목은 사이클을 늘이는 힘과 조정을 앞당기는 힘, 양쪽으로 작동한다. 판별 지표는 PJM 차기 경매와 캐펙스 가이던스.
자주 묻는 질문
Q. AI 에이전트는 왜 일반 AI보다 전기를 많이 쓰나요?
스스로 계획하고 도구를 쓰는 과정에서 모델을 수십 번 반복 호출하고, 작업 기록이 누적되며 입력이 계속 커지기 때문입니다. KAIST 연구에서 도구 사용 에이전트는 단순 추론보다 평균 9배 이상 모델을 더 호출했습니다.
Q. 136배라는 수치는 모든 AI 에이전트에 해당하나요?
아닙니다. 70B 모델에서 Reflexion 방식 에이전트가 다단계 질의응답을 처리할 때의 GPU 에너지 기준 상단값입니다. 논문이 제시한 범위는 62.1배에서 136.5배이고, GPU 외 설비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입니다.
Q. 전력 부족은 AI 버블의 신호인가요?
두 해석이 공존합니다. 공급 제약이 사이클을 길게 늘인다는 견해와, GPU가 놀면서 투자 효율이 떨어져 조정을 앞당긴다는 견해입니다. 본문에서는 두 견해의 근거와 판별 지표를 함께 정리했습니다.
Q. 한국 데이터센터 전력은 충분한가요?
정부 전망 기준 국내 수요는 2025년 8.2TWh에서 2038년 30TWh로 늘어납니다. 용인 클러스터만 장기적으로 10GW 이상이 필요해, 발전소 부지와 송전망 건설 속도가 최대 변수입니다.
다음 ⑧편에서는 이 병목의 반대편, 그러니까 전기를 공급하는 쪽을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원전·SMR 계약 지도와 전력기기 수주잔고의 의미를 다루겠습니다. 전력 병목을 사이클로 보시는지, 버블의 전조로 보시는지 댓글로 의견을 남겨 주시면 다음 글에 반영하겠습니다. 시리즈 흐름이 궁금하신 분은 ⑤편 BIS의 경고와 ⑥편 하이퍼스케일러 캐펙스를 먼저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본 글은 일반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개인의 책임이며, 필요할 경우 전문가 상담을 권합니다. 본문의 수치는 2026년 7월 5일 확인 기준입니다.
참고자료
· KAIST 유민수 교수팀, "The Cost of Dynamic Reasoning" (arXiv 2506.04301, IEEE HPCA 2026 게재) — arxiv.org
· IEA, 『Energy and AI』 (2025.4) 중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전망 — iea.org
· PJM, 2027/28 Base Residual Auction 결과 (2025.12) — pjm.com
·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Queued Up』 접속 대기 통계 — lbl.gov
· 한국전력,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 (2025.5) — kepco.co.kr
📚 「버블인가 사이클인가」 시리즈
① 선샤인실버 IPO, 첫날 27% 뛴 이유
② 스페이스X 상장, 사상 최대인데 왜 걱정일까
③ 닷컴버블 vs AI 2026, 데이터로 본 진짜 차이
④ 원·달러 1,531원, 서학개미가 챙길 것
⑤ BIS도 경고했다, AI 1조 달러의 함정
⑥ 빅테크 1조 달러, 이 돈은 어디서 나오나
⑦ AI 전력 136배, 꽂을 전기가 없다 (지금 보는 글)
글쓴이 Hoony
현 사업가, 증권사 출신. Hoonyspot은 재테크·정부정책·OTT·IT를 가능한 직접 경험하고 검증한 내용만 정리하는 라이프 매거진입니다. 이 글에 적힌 수치·정책 조건은 발행 시점 기준이며, 변동될 수 있습니다.
대화 참여하기